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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사람들 28 월악산- 푸르름을 더하는 산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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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안강 댓글 0건 조회 207,968회 작성일 18-08-28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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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소리가 산을 깨운다. 회색빛으로 흩어지는 구름 사이로 초록바다의 파도가 백두대간을 방파제 삼아 일렁거리기 시작했다. 저 초록바다 어딘가에 산양이 살고 있을 것이다. 월악산에 산양이 살기 시작한 것은 삼성에버랜드 동물원이 94년 ‘심산’과 ‘심순’이라 이름 붙인 산양 한 쌍을 방사하면서부터다. 그뒤 97년 ‘월악’과 ‘묘향’이, 98년 ‘푸른’과 ‘산하’가 월악산의 새 식구가 되었다.

천연기념물 217호인 산양 방사에는 환영과 우려가 엇갈렸다. 그리고 4년, 98년 12월 방사된 산양 가운데 한 마리가 비스켓을 받아 먹는 사진이 보도되면서 방사는 실패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고 비스켓 따위를 주워먹어 산도 오르지 못한다는 것이 당시 보도의 내용이었다. 6마리 가운데 2∼4마리가 밀렵에 희생됐을 거라는 추측도 신문의 한 모퉁이를 함께 채웠다.

그러나 아니라고 했다. 월악산을 가장 잘 안다는 월악산민간구조대 5명 대원들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월악산국립공원관리사무소가 보여준 관찰일지에는 등산객과 주민들, 그리고 직원들의 목격담과 사진들이 빼곡했다. 확인하고 싶었다. 다 저녁에 월악산 영봉초소를 지키는 노제원(24)씨를 앞세워 산을 올랐다. 똑바로 서도 코가 땅에 닿을 정도로 급한 비탈을 모둠뛰기로 오른 발자국과 소나무 등걸에 남은 선명한 이빨자국, 그리고 비탈 군데군데 산양이 먹이를 뜯은 흔적들을 만날 수 있었다. 삼성에버랜드 동물원의 추측대로 산양은 끝내 모습을 볼 수 없었다. 동물원쪽은 산양의 번식을 믿고 있었다. 산양 배설물에서 발견된 유난히 크기가 작은 것들은 새끼들의 것이 아니겠냐는 추측은 조심스러웠다. 아직 새끼의 모습이 관측되지 않은 탓이었다. 새끼와 함께 있다면 좀처럼 모습을 보기 어렵다는 것이 동물원 신동열(49) 사육과장의 설명이었다.

동물원은 산양을 방사할 때 산양의 관리와 추적을 마을 주민들에게 부탁했다. 그 일을 맡게 된 것이 안상훈(46)씨와 정윤철(45)씨였다. 안씨는 13년 동안 월악산 영봉에서 등산객들을 상대로 노점을 열면서 캔 맥주 4상자를 지고 수 천번 영봉을 오르내린 이였다. 안씨는 15년 넘게 월악산에서 송이버섯을 따온 정씨가 자신보다 산을 더 잘 안다고 겸손해했다. 그 둘은 5년여의 산양지킴이를 함께 했다.

봄이면 취나물 같은 나물류의 새 잎만을 가려 먹을 정도로 까다로운 입맛을 보이다가도 겨울이면 딸기나무 줄기까지 몽땅 먹어치우는 식성, 풀을 뜯고는 반드시 나무줄기를 물어뜯는 습성을 정씨는 “산양은 식사 뒤에 반드시 양치질을 한다”고 표현했다. 물은 언제 먹으며 잠자리는 어떻게 꾸미며 하는 산양이야기는 내버려두면 밤을 지새도 끝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들도 보도내용을 알고 있었다. “에이, 산양은 안 죽었어요. 97년 방사된 한 마리가 전파수신기로도 찾아지지 않을 뿐이에요.” 97년과 98년에 방사한 산양 4마리는 전파발신기를 달고 있으니 언제든지 쉽게 확인할 수 있고 처음 방사된 두 마리도 잘 놀고 있다고 했다. 97년 11월 월악산 넘어 덕산쪽에서 1주일 동안 보이다 진눈깨비가 내리던 날 사라진 한 마리만이 보이지 않을 뿐이라고 했다. 안씨와 정씨는 산양이 밀렵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도 믿지 않았다.

산양을 월악산에 방사한 동물원에서는 마을 유치원생과 초등학생, 중학생들을 매년 초청한다고 했다. 아무런 대가없는 산양지킴이를 마다하지 않는 데 대한 보답이었다. 학교 선생님들은 아이들에게 에버랜드에 감사의 편지를 보내게 했다. 그러면서 환경에 대한 중요성은 아이들 머리에 각인됐다. 그런 아이들 앞에서 어느 부모도 밀렵을 이야기할 수 없었다.

5년이 흐르는 동안 매달 찾아오는 동물원 사람들과 산양지킴이들은 호형호제할 정도로 신뢰를 쌓았다. 농사를 짓는 정씨는 “일꾼을 불렀다가도 동물원에서 사람이 내려오면 일을 작파하고” 함께 산에 오른다고 했다. 월악산을 잘 모르는 동물원 사람들을 홀로 산에 올려 보내기가 아무래도 미덥지 않기 때문이다. 동물원 사람들은 또 자신들이 아는 것은 알려주고 모르는 것은 배우는 데 인색하지 않았다.

나물의 새 잎만을 골라 먹는 까다로운 식성을 보이다가도 겨울이면 산 아래까지 내려와 딸기나무 줄기로 허기를 채우곤 하는 산양의 계절별 순환과 느릅나무 같은 매끄러운 줄기를 가진 나무의 껍질까지 벗겨 먹기도 한다는 것을 밝혀낸 것은 정씨였다. 15년 동안 송이버섯을 채취하면서 하루도 빠짐없이 기후와 온도 등 환경변화와 송이산출을 기록할 정도로 꼼꼼한 정씨의 기록과 관찰 능력이 발휘된 것이다.

안씨도 13년간이나 계속해 온 영봉 노점일을 지난 3월 그만두었다. 국립공원사무소의 설득도 설득이었지만, 먼저 그만둬야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만두라고 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구조대는 대장을 포함해 전체 인원 5명. 제천시에서 주최한 96년 산악마라톤대회에서 같은 조로 참석해 1등을 한 안씨와 정씨 그리고 전주환(44)씨가 주축이 돼 박호철(41)씨와 석상희(30)씨를 끌어들였다. 높지 않은 월악산이지만 험악한 지형 탓에 종종 발생하는 조난사고 해결이 이들의 몫이다. 구조대를 발족하면서 이들이 제일 먼저 한 것은 휴대폰을 마련한 것이었다. “밭에 갈 때도 휴대폰은 빼놓지 않아요. 휴대폰이 안 되면 대장이 오토바이로 밭을 돌아요. 그러고는 함께 산에 가는 거죠.” 이전에도 구조대는 있었지만 너무 많은 인원이 참가하다 보니 막상 구조활동시 인원 모으기도 어려운 탓에 인원을 조촐하게 꾸렸다는 것이 안씨의 설명이었다. 이제 산양지킴이 활동은 안씨와 정씨의 일일뿐 아니라 구조대 전체의 일이기도 하다. 이들의 꿈은 “월악산 하면 산양”이 떠오르도록 하는 것이다.

이러한 소원은 월악산국립공원사무소도 마찬가지다. 충북포수협회까지 찾아가 자문을 받아 월악산에 널린 밀렵도구를 찾아낸 것은 국립공원사무소가 해야 할 당연한 일로 넘길 수 있다. 그러나 해발 1019m 높이의 영봉에 초소를 설치하고 옹달샘의 물을 길어 나르는 노력은 월악산에서만 볼 수 있는 일이다. “영봉 바로 아래 옹달샘은 산양이 물을 먹는 곳입니다. 산양을 놀래킬 것이 걱정돼서요. 뭐 탐방객들에게 시원한 생수 한잔 서비스한다고 생각하면 물을 긷는 일도 어렵지 않아요.” 국립공원사무소는 오히려 지난번 보도로 에버랜드 동물원의 산양 방사계획이 중단될 것을 걱정하고 있었다.

과거 월악산을 찾은 경험이 있는 이들은 올해의 월악산을 보면서 “많이 깨끗해졌다”고 입을 모은다. 국립공원관리사무소는 마을 주민들의 협조에 공을 돌리고 주민들은 맺고 끊음이 분명해진 사무소쪽의 일처리를 칭찬한다. 월악산 하면 산양을 떠올릴 수 있도록 하겠다는 공동의 목표를 갖게 된 뒤로 민원을 둘러싼 불미스러운 일이 줄고 있다는 데 이견을 다는 이는 만나지 못했다.

산양 방사는 아직 실험 중이다. 근친교배로 태어난 산양들이 제대로 번식할지 더 두고 봐야 한다. 월악산이 과연 산양이 서식하는 데 적합한 장소인지에 대해 문제를 삼는 목소리도 들려온다. 그러나 월악산에서 이뤄지고 있는 실험은 멸종위기에 처한 산양의 개체수를 늘리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다. 산양을 지키고 번식시키려는 노력은 자연스레 환경보호로 이어지고 있다. 마을사람들은 이제 송계계곡의 풍부한 물고기에도 투망을 던지지 않는다. 해마다 산양의 먹으거리를 보존하기 위해 봄철 산나물 채취도 포기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산양의 갈증을 풀어주기 위해 4시간 산을 올라 옹달샘을 청소하는 노력도 계속될 것이다. 월악산의 산양은 보호대상을 넘어 월악산 환경보호운동을 이끄는 하나의 상징이다.

출처: http://100mt.tistory.com/entry/백두대간사람들-27-월악산-푸르름을-더하는-산양 [<한겨레21> 신 백두대간 기행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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